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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 12일 운명

  • 7월 10일
  • 9분 분량

1998년 7월 12일

동대신동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명을 바꿀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운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고 살아야 할까요?


 업(業)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나온 말입니다만 자신이 한 일에 의해서 자신 속에 존재하게 된 일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활동을 통해서 존재를 이어나갑니다. 이러한 사실은 운명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들 속에 만들어진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만들어진 그것은 그것이 만들어지도록 했던 과거의 행동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인간으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의 활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을 운명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에 의해 자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어떤 실수를 처음으로 저지릅니다. 그 후 그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 속에 같은 실수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 만들어져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운명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빨간색 물감에 흰색 물감을 섞을 때 섞는 양이 많아짐에 따라서 빨간색 물감은 빨강에서 진분홍, 진분홍에서 분홍, 다시 분홍에서 연분홍으로 결국에는 흰색에 가깝게 변해갑니다. 같은 식으로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깨달음을 자신 속에 받아들이면 자신에게 특정한 실수를 유발시키던 원인이 약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운명은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고 활동을 계속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속에 있는 일 즉 운명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운명은 더 어두워져 갑니다.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은 삶을 통해서 어떤 새로운 일들이 자신 속에 들어와서 활동을 하게 되면 그 일들이 가진 인연들에 의해서 운명이 좋게 혹은 나쁘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운명은 윤회의 과정 속에 일어나는 일들 즉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삶의 모든 일들에 관여를 합니다.


 윤회란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통해서 자신을 반복하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활동에 의해서 윤회를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도 활동을 통해서 존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끝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운명은 개인에게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일은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즉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개인의 운명 뿐만 아니라 사회나 국가 나아가 세상 전체의 운명을 만들고 바꾸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알아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이 이치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처럼 사회나 국가도 이치에 의해서 변화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사회 혹은 국가의 운명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일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일본을 미개한 나라라고 여겼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일본에는 어떠한 가르침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조선 사람들이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에 기인합니다.


 당시 일본에는 가르침이 존재했습니다. 그 가르침은 조선 시대의 유교나 그 밖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보다 뛰어났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일본이 한국을 앞질러 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에 존재했던 가르침 덕택이었습니다.


 일본사회에 많은 가르침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일본에는 풍신수길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을 통일시키고 난 후 여러가지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일본에도 신이 있으니 외국의 신은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그는 기독교나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는 현실에 대한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다양한 방면의 많은 조선 기술자들을 일본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에 끌려갔던 조선 도공들의 후예들이 그들의 기술을 일본의 전통과 접목하여 큰 가문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대중 매체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현실에 대한 중요성을 제도적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을 현실에 대해서 뛰어난 사람들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조선의 사람들은 무엇을 받아들였고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들은 유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유교의 가르침은 사람을 일깨워주지 못합니다. 유교는 문제와 답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들은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현실에 눈이 멀게 된 조선의 지도자들이 한 일은 이상적인 가르침을 조선에 도입하고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상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현실에 눈이 먼 장님이 되어버렸습니다. 집안에 먹을거리가 없는데도 그 집의 가장인 선비가 책만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못된 결과의 대표적인 사례들 중의 하나입니다.


 4백 여년 전부터 일본 사람들은 한국사람보다 현실에 대해 더 현명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현실 생활에 현명한 사람들이었고 한국 사람들은 이상적인 일에 머리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한국 사회에는 많은 어두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이나 세계의 선진 국가들에는 이런 어두운 일들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문제가 없고 국력이 신장된 선진 사회에는 현실적인 가르침들이 많았습니다. 현실적인 가르침이 그 사회를 세계 속에서 앞서가는 사회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불안정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사고가 이상 속에 빠져서 현실의 문제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좋은 가르침이나 좋은 판단이 존재하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일을 할 때에는 실패가 많고 아는 일은 할 때에는 성공이 많습니다. 왜 우리사회에는 이런 기본적인 가르침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유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의 원인들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집단 사고 때문에 우리 사회의 현재는 불안정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운명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운명은 어떤 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절대적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어떤 일들이 존재해 왔는가를 외국의 경우들과 비교해보겠습니다. 우리 구성원들 중의 한 명인 영국인 폴의 동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올 해 18살인 폴의 막내 동생과 그들의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전히 어머니의 부양 아래에서 살고 있던 그는 어느날 그의 어머니에게 대학에 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왜 대학을 가려고 하냐고 아들에게 따져 물었다고 합니다. 이 문제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다툼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사정은 어떤가요?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대다수가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혹시라도 자식이 대학에 안 가겠다고 하면 왜 대학을 가지 않으려고 하냐고 화를 냅니다. 자식을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절에 가서 빌고 바위 밑에 가서 빌고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합니다. 그 부모들이 부유하게 살아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아버지는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면서도 자식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갖은 노력을 다 합니다. 이것이 선진국의 부모와 후진국의 부모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입니다.


 대학을 보내는 것이 좋다 혹은 좋지 않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식이 대학에 가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자신의 앞날에 대한 밑거름을 만들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않고 단지 대학 졸업장만을 탐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사실입니다.


 재미있는 일은  인구 대비 대학의 수가 제일 많은데도 불구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대학 교육이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이나 공학 등과 같이 현실의 문제들에 관련된 교육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대학학과들은 이상에 뿌리를 둔 교육을 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당굿을 가르치는 대학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대학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한 번 자신 속에 받아들인 것은 계속 존재하면서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받아들인다면 자신 속에서 좋은 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좋은 일들을 보게 되지만, 나쁜 것을 받아들인다면 자신 속에서 나쁜 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나쁜 일을 보게 됩니다. 즉 교육을 통해서 배운 것들이 바로 운명의 근원이 됩니다.


 학문이란 존재하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말합니다. 전문인 교육이란 해당 교육을 받는 사람이 전문인의 기능을 습득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문 기능인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만 많이 세워 놓았습니다. 게다가 그런 대학들은 단지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입시제도라는 벽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국에서 70년대 이후 대학에서 전문성이 없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로 진출해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이미 불안정했던 이 사회가 어떻게 변해갈 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을 도우는 일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도 돌보기가 힘듭니다. 별일 아닌 일에 신경질을 내고 문제를 유발시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에 들어간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한국의 교육은 존재하고 있는 일에 대한 탐구를 통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문제와 답을 외우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수수께끼의 답을 많이 안다고 해서 유능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지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일을 잘해야 합니다. 한국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맡은 일을 잘한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사회를 이끌어 갈 인재의 발굴과 양성에 실패했고 얼마되지 않는 인재들도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잘못된 교육 정책, 잘못된 행정, 잘못된 언론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되어 개개인의 의식은 점점 어두워지고 그 어두운 사회와 의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수를 만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우수한 학위를 가진 사람이 좋은 선생이 아니라 뛰어난 기능을 가진 사람이 좋은 선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좋은 기술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지만 알지도 못하는 말은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금강산 봉우리가 몇 개인지, 백두산의 높이가 얼마인지, 낙동강의 길이가 얼마지인지를 안다고 해서 삶에 어떤 이익이 됩니까? 이런 정보들의 암기가 교육 과정의 주된 내용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은 현실을 잘 이해하고 좋은 기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만 그런 스승들은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일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깨달음이 없는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바위가 금이 될 것이라고 아무리 믿는다 하더라도 그 바위 속에 금이 존재하지 않다면 어떻게 그 바위로부터 금을 얻겠습니까? 믿음 즉 신뢰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과정이기는 하지만 믿음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Can these wrongdoings be resolved overnight through prayers? Absolutely not. Belief cannot solve everything. What use is belief without enlightenment? No matter how much you believe that a rock will turn into gold, if gold does not exist within that rock, how can you obtain it? Belief—that is, trust—is an important process in carrying out tasks, but faith alone cannot achieve everything.


 우리가 있는 일들을 잘 알아서 잘 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 사회에는 국가를 부흥시킬 수 있는 희망이 가득할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은 국민 개개인들의 정신에 달려있고 개인의 운명은 사회의 제도나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즉 개인의 운명은 국가의 운명에 따라 변화합니다.


 있는 일이란 자신이 행한 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생기는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자신이 행한 일들에 의해서 원하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 생기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서 삶이 풍지박산이 나서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있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는 있는 일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일본에는 십 몇대손까지 이어서 도자기를 굽는 가문들이 있습니다. 조선에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우동가게를 잇기 위해서 검사직을 사퇴했다는 어떤 검사에 대한 보도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이어 운영하는 우동가게가 잘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동가게의 장사가 잘되니까 검사직을 그만둘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일들이 일본사회에 존재했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이라는 사회가 한국사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험을 쳐서 어떤 자리에 앉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음식, 좋은 그릇, 좋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일은 기능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영국도 앞서 언급한 부모들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영국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국가가 잘못을 할 때 일어나서 항의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힘센 자가 잘못을 하면, “아! 누구든지 실수는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부나 위로를 하려고 하지 실수에 대해서 따지려고 하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런 일들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 따져보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결과 최근 외국인들이 지적한 것처럼 관료들의 횡포가 무서워졌습니다. 이런 일들의 원인은 잘못된 가르침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어떤 인연을 가지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있는 일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요, 사회를 복되게 하는 길이요, 국가를 빛내는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들은 TV에 나오는 운동 선수나 연예인들입니다. 진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가장 친한 벗은 TV입니다. 한국에서는 TV가 인물을 만들고 나라 안의 모든 일들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TV에서 사회나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개인이나 사회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진실을 절대 다루지도 밝히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 왜 그런지를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요.


 누구도 부인을 할 수 없는 사실은 잘못된 기득권을 살리기 위해서 선량한 사람들의 운명을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나라의 국민 모두가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어떤 인연이 존재하고 있고 그런 인연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밝혀줄 진실된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가르침이 우리사회에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이런 가르침이 언제쯤 우리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대해 눈을 감거나 현실을 아무리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존재하고 있는 일은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있는 일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활동을 통해서 개인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즉 미래를 내다보는 사고를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잘되게 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있는 일을 안다면 우리에게 운명은 필요없습니다. 있는 일을 아는대로 하면 됩니다. 자신의 좋지 않은 운명을 버리고 좋은 사람의 운명을 따라가면 자신의 나쁜 운명은 없어지고 좋은 운명이 찾아오게 됩니다.


 질문이 있으면 받고 없으면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정회심 : 소크라테스가 왜 4대 성인에 속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그의 가르침과 그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소크라테스가 4대 성인에 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을 깨우치기 위해서 있는 일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있는 일을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있는 일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알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좋아집니다. 나쁜 일을 멀리하고 좋은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사상과 행동 때문에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상과 행동 때문에 그는 독약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정이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당하도록 투표했습니다. 그가 죽고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비로소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스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하는 일도 있는 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일을 알도록 가르치고 깨우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일을 밝히려 했습니다.


 정회심 : 책에는 소크라테스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 있었다고 나와있습니다. 첫번째는 보석금을 내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는 것이었고, 세번째는 가르침을 행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것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정의’에 관해서인데 소크라테스에는 독약을 마시는 것이 정의였습니까?


 좋은 근본을 가지고 태어나서 좋은 일이 자신 속에 존재한다면 그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첫번 째, 보석금을 낸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번 째, 다른 나라에 가면 진실을 말하고 살 수 있었을까요? 세 번째, 옳은 자가 옳은 일을 하지 못하고 진실한 자가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그 삶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정의(正義)에 관한 질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는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을 읽고 그것을 가지고 어떤 생각으로 문제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많은 착오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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