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20일: 운명이란 무엇인가?
- albe29
- 2023년 12월 13일
- 1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12월 23일
운명이란 무엇인가?
같은 물이라도 누가 마시는가에 따라서 그 물은 다르게 변한다.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사슴이 물을 마시면 녹용을 만든다. 독사가 녹용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세상일을 배우고 보면서 가장 두렵게 여겨지는 것은 업이다. 왜냐하면 업이 세상에 운명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받아들인 모든 일들은 업을 만들고
업은 자신을 지배하는 운명을 만든다.
업이 큰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은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업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업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쇠붙이 하나에도 업이 존재한다. 그 업이 다른 쇠붙이와 구별되게 한다.
석가모니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조국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백성들은 자기자신들과 자신들의 조국에 필요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쾌락만을 추구하거나 이상 속에 있는 일들만을 쫓으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하여 방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나서서 몇 번의 외부 침략을 막았다. 그러나 같은 일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을 보고서 그는 그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그 나라와 그 나라 백성들에게 지어진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조국이 망하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석가모니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현재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이 나라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위해서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그러나 이 땅에서 좋은 운명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나 소망을 가진 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의식은 존재하고 있는 일들로 인하여 만들어진다. 자신 속에 존재하게 된 일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활동을 한다. 잘못된 일들이 잘못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만들고 그 사람들은 잘못된 사고로 인해서 잘못된 활동을 반복한다. 그러한 이유로 어떤 깨달은 자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어떤 자도 이 시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상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다 보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불가능한가? 세상과 그 속의 모든 현상은 하나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한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어야 한다. 해답을 구하는데 있어서 문제의 존재가 필수불가결이다. 문제가 없는 해답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좋은 문제를 만들면 좋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서 좋은 문제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문제가 없는 해답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이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이 어둠 속에 존재하게 만들 것이다.
운명은 인연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운명은 작게는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크게는 세상을 지배한다.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이 삶을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자기자신을 힘들게 만든다.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주체가 되면 그 사회는 어려운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를 경영하게 되면 그 국가는 망하게 된다. 이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잘못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절망적인 일이다. 그런데 잘못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절망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수학에서 숫자와 공식을 이용해서 무수히 많은 문제들을 만들 수 있듯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이용해서 무수히 많은 문제들을 만들 수있다.
‘5 + 5’라는 문제와 ‘10’이라는 해답이 있다. 그대로 둔다면 문제와 해답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5’를 ‘12’로 바꾸거나 ‘+’를 ‘x’로 바꾼다면 ‘17’이나 ‘25’라는 새로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문제)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결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떻게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위에서 본 것처럼 먼저 문제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수학에서는 숫자를 알아야 하고 공식을 이해해야 한다. 같은 식으로 현실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알고 그 일들로 인하여 자신에게 존재하게 되는 의식 속의 일들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도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생각에 의존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일들에 의존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자신의 운명 자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충분한 이해가 있다면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들도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행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나쁜 운명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 즉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정확하게 알고 그 일들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런 일을 통해서 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스스로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삶은 자기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다. 삶을 통해서 미래의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을 통해서 현세에서는 물론 끝없는 내세에서까지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운명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그 기틀은 자신의 행위와 판단과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나는 며칠 전에 그 서울에 올라갔었습니다. 어떤 종교의 지도자를 만났어요. 그 사람은 그 종교에서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래: “단순히 밥 세끼와 잠자리 등과 같은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평생을 거짓 속에서 사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나는 종교라고 하면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들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나의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 중에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문제가 없는 해답만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지, 문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해답을 얻게 되는가에 대한 일들은 전해주고 있지 않다.”
종교 지도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여래: “당신이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 휩싸여 놀아나고 있는데 만약 나의 곁에 와서 1년 동안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당신 자신 속에 있는 업이 당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된다. 업이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할 때 인간은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서 사물을 볼 수 있다. 당신과 내가 다른 점은 당신은 있는 일을 당신의 생각으로 보려하고 나는 있는 일을 있는 것을 통해서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자신도 집을 나오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내가 간다고 나왔더니 택시까지 태워주고 부산 갈 때 쓰라고 차비도 챙겨주었습니다. 중이 차비 주는 거 봤습니까? 그렇지요? 내가 받아오기는 왔습니다만 다른 승려들에게서는 그런 행동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조계사에 한 번 가 보았습니다. 이전에 없던 모임이 많았습니다. ‘개혁회의’니 ‘정화회의’니 ‘정경대’니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도 기가 차서 물어봤어요.
여래: “여기도 뭔가 가르침이 있습니까?”
승려: “당신 종교를 가지고 있소?”
여래: “지금은 종교를 안 가지고 있지만 종교에 귀의하고 싶는데 종교가 뭐하는 곳인지 몰라서 아직 귀의를 못한다.”
그랬더니 자신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승려: “종교는 나쁜 일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도대체 조계사같은 큰 사찰에서 이따위 말을 할 수 있는가 싶어서 물었습니다.
여래: “나쁜 일하지 말라는 것은 대순진리회에서도 하는 말인데 대순진리회하고 비슷한 겁니까?”
승려: “아! 거 하고는 좀 다르다.”
여래: “그렇습니까? 아! 기독교에서도 나쁜 일도 하지 말고 살인도 하지 말라는 등 여러가지가 있던데.”
승려: “비슷비슷하다.”
여래: “그것이 부처의 가르침입니까? 부처님께서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고 45년 동안이나 길을 헤매는 고생을 했습니까?”
그랬더니 그래요.
승려: “지금 당신 내 말 들을것이요, 안들을 것이요?”
안 듣는다고 말하면 가라고 할 것이 분명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래: “당신 말을 듣다가 보니까 궁금증이 생겨서…”
승려: “아니 이 사람이?”
여래: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도 여기서 당신들이 배우느냐 하는 것이고, 만약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듣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엉뚱한 것을 가르치려고 하고 있군요.”
그랬더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여래: “한가지만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이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자 그는 ‘허허 이 사람하고는 말못하겠네’라고 말하고는 그만 가버렸습니다. 그는 훈련원의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곳에서는 인간을 깨우치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들을 무지하게 만들어서 어둠 속에 밀어 넣는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오늘 특별히 운명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속았든 속지 않았든지에 관계없이 우리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이 의식의 근원이 됩니다. 이 의식의 근원은 끝없는 생을 통해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어떻게 과거에 있었던 일이 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점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얼마든지 이 자리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의 부모는 일찍 죽었기 때문에 고아로서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남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고 거짓말 하지 않았습니다. 내의 장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사람들한테 거짓말 안하고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인간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식주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은 여러분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아무에게서도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음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외로움과 안타까움과 답답함은 여러분의 그것들 보다 수만 배는 더 클 것입니다.
지난번 MIT 공대를 방문했을 때 그 대학의 학장은 나와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학장: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
여래: “사실 깨달음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목표이긴 하지만 당신이 실제로 깨달음을 얻고 나면 그렇게 좋은 일은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학장: “왜 그렇습니까?”
여래: “저도 제자신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합니다만 깨달음을 얻고 나자 나의 아내는 5년 동안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숨만 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었는지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아내 조차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깨달은 자의 현실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아내에 의해서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수모를 겪지 않았습니까? 부처가 세상에 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뜻은 천하에 그 누구도 자신을 돌보아 주지 않는 고아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한 국가의 왕이었던 그의 아버지도 석가모니에 대해서 잊어버렸습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고행을 하면서 헤매고 다녔을 때에는 병사를 통해서 먹을 음식도 갖다 주고 아들이 어느 지방에 있는지 수소문도 하는 등의 걱정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가 자신의 업을 태워버리고 막상 깨달음을 얻어 진실한 사람이 되자 그의 아버지와 그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외면했습니다. 즉 그는 세상에서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는 천하의 고아가 되었습니다. 사실 나도 대접받을 곳도, 보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여기 이 대학에도 온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깨달음을 얻으면 여러가지 힘든 일들을 접할 수 밖에 없지만 업이 없어짐으로해서 남을 망치지 않고 자신도 크게 망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운명은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이 자신 속에 쌓이고 그것이 업이 되어서 자신을 조종하게 되는 일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두 물질이 결합하면 다른 성질을 가진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어떤 인연을 통해서 어떤 일을 자신 속에 받아들이게 되면 이후에 받아들인 일과 같은 활동을 할 때마다 자신이 얻게 된 성질이 나타나게 됩니다. 나아가 그 성질은 온갖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할 때 한 사람은 실패를 하는데 다른 한사람은 성공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각자의 운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운명은 왜 다를까요? 위에서 설명했듯이 과거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그로 인하여 자신 속에 존재하게 된 일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각자의 판단과 생각과 그리고 선택이 다르게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업이 크면 판단이 정확하지 않고 행동이 미지근하고 선택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아서 하는 일을 실패하게 됩니다. 반대로 업이 작으면 있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있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잘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중에서 나와 함께 일을 해본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그 사람들은 내가 남다르게 존재하고 있는 문제들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저는 성인이 된 후, 큰 어려움이 없는 생활을 해 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실패가 없었습니다.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남들만큼 노력은 많이 하지 않지만 작은 일에서도 손실을 입지 않고 항상 이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업이 작기 때문에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보려고 하고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 문제가 잘못되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세상의 모든 해답은 문제 속에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한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사무실 직원: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여래: “이곳에 조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왔습니다.”
사무실 직원: “아! 당신같은 사람 여기 많이 찾아옵니다.”
그 때 나는 말했습니다.
여래: “그렇다면 저도 이제 안심을 했습니다. 이 나라에 인재가 많으니까 이제 이 나라는 희망이 있다는 거에요.”
그러나 저는 그 말을 하고 나오면서 씁쓸했습니다.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는 그 국가나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문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한답시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해답만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지고 있지 않고 답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도우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문제가 없으니까 문제가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문제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해답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문제가 없으면 그 해답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결국 쓸모 없는 일만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문제가 없는 해답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은 쓸모 없는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왜 그 일이 잘 풀리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문제를 아는 것이 급선무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매우 어둡습니다. 즉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고나 신체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교육을 통해서 거의 같은 내용을 배우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의 사고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구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이 이 나라 사람들 보다 특별히 얼굴이 잘 생겼다든가 말을 잘한다든가 신체적으로 뛰어나다든가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아침에 벌어진 마라톤 경기에서도 이봉주가 1등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딘가 특별하게 뒤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가지를 꼽아보자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올바른 가르침이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는 매우 어두운 쪽으로 발달해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현실에 기여를 한 것이 유교입니다. 유교의 가르침에는 문제는 없고 해답만 존재합니다. ‘형제와 잘지내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등.’ 물론 그 말들은 우리에게 다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사람들을 가르치면 그런 사람이 되거나 그런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교적 해답은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일만 하게 했습니다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 속의 일들을 살펴보면 아찔아찔합니다. 그러한 유교적 교육을 받은 사람은 명령만 내리면 모든 것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어디가서 이런 걸 얻어 오라’고 명령을 내리는 경우에 명령을 받은 사람이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어디에 가서 어떻게 그걸 얻어야 하는지에 관한 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명령을 받은 사람이 만약 있는 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걸 며칠 안에 얻어오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은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든가 반항했다고해서 죽여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본 나약한 자들은 두려워서 항거를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반항은 안했다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두려우니까. 그렇게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옳은 사람들을 죽인 일들이 사회를 얼마나 어둡게 한 원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소름이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유교적 사고의 영향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한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일을 위해서 캠페인을 할 경우에는 첫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방안을 실행하기 위한 지침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사람이 선정되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네가지 사항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캠페인을 하게 되면 쓸모 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국민운동이 몇 년 전에 있었지만 그 캠페인에서는 위의 네 필수 요건을 갖추는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엇에 관해서 가르쳐야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방안이 필요없었습니다. 즉 설계도가 없었습니다. 지침이란 방안 즉 설계도를 실행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설계도가 없었으므로 당연히 가르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캠페인의 목적과 방안 그리고 지침을 가르치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선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세계적으로 훌륭했다고 평가받아 온 1970년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은 당시의 국가가 쓴 엄청난 비용에 비한다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 말에 대해서 누군가가 추궁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래: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여래: “그 증거가 시골에 길을 넓히고 포장을 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길을 포장하기 위해서 쓰여진 돈과 노력보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간판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된 돈과 노력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실제적으로 국민들의 정신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런 일들이 사회를 잘못되게 합니다. 답만 존재하고 문제는 없는 유교와 같은 가르침이 이런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만일 장님인 상태의 여러분들이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존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여러분들은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환경입니다.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업의 영향에 의해서 이런 현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사고를 움직이고 있는가? 그것은 자신 속에 존재하게 된 일들이 계속해서 자신 속에서 활동을 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존재하고 있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혹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길흉화복의 원인은 존재하고 있는 일 속에 있다’라고 계속해서 설명해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현재의 위험한 현실에서 벗어나 희망이 있는 미래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존재하고 있는 문제 하나를 내어 놓고 해결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국가의 운명이 달라지고, 사회의 운명이 달라지고, 여러분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문제 하나만 내어 놓고 제대로 해결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하지만 도움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일을 외면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깨달음을 얻었고 엄청난 지혜를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권력자의 옆에는 온갖 사람들이 돈 보따리를 싸들고 와서 기다리고 있지만 깨달은 자의 옆에는 왔던 사람도 도망을 가 버립니다.
며칠 전에 한 사람이 이곳에 찾아왔었습니다. 이자리에 참석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의지가 허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처럼 여기에 왔던 몇몇 사람들은 한동안 이상한 종교 단체에 머물렀던 사람들인 모양이었습니다. 세상 일에 대해서 큰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단체에 현혹되어 한 번 끌려가 버리면 그걸로서 인생은 끝나버립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거짓에 속아서 독약을 보약인 줄 알고 먹습니다. 중요한 것은 독을 먹은 사람은 보약을 먹지 않으려 하지 않습니다. 보약을 주면 그 사람들은 그 보약이 얼마나 자신에게 좋은 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더 좋은 걸 기대하다가 그 욕심에 또 독을 먹게 됩니다.
저는 과학자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보고 말합니다. 자료를 어떻게 구했는지 혹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에 어떤 곳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를 지적합니다.
우리는 있는 일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있는 일이 어떠한 영향을 갖는가? 저는 여기에 오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지금은 매우 위험한 때이다. 시골에 가서 가만히 파묻혀 있어라. 그러면 생명은 부지할 것이고 생명이 붙어있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 희망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항상 여러분에게 되풀이해서 말하는 가장 참고가 되는 말은 이것입니다.
“문제가 없는 해답은 쓸모 없는 일을 하게 한다.”
말 속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들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하는 말이 가장 좋은 가르침입니다.
부처가 일생동안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인과법입니다. 인과법이란 어떤 일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법칙입니다. 일생동안 사람들에게 인과법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한 일도 살펴보면 존재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한 것이었습니다. 그 두사람을 포함한 모든 성인들은 있는 일을 알리려고 했습니다만 소위 중생이라는 사람들은 업을 가지고 있고 그 업을 통해서 성인들의 말을 듣고서 있는 일에 관한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싸움을 합니다.
이 나라는 졸업장을 중요하시하는 국가로서 세계에서 입시경쟁이 제일 치열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다른 선진국에서 처럼 졸업장을 이용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도둑질도 못하고 월급만 받다가 그만 두어야 했다면 이런 현실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졸업장이나 학위를 가지는 것만이 성공할 수 있는 혹은 자신을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부모들은 기를 쓰고 자식들을 공부시키려고 하고 자식들 스스로도 공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중대한 문제는 이 나라 사람들이 받는 교육 속에는 문제에 대한 중요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교육을 통해서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문제를 보지 못합니다. 문제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장님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나는 사람들을 보고 항상 이렇게 느낍니다. ‘존재하고 있는 일 속에 답이 있는데 왜 사람들은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으로 보려고 할까?’ 생각에 의지해서 일을 하니까 문제 속에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다른 누군가가 와서 대신 해결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암담하게 만들어 놓은 원인입니다.
요즘 신문이나 TV에서 신용도가 올라가고 있고 경제 상황도 곧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발표가 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 전망들에 위안을 받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전망들 속에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보이지 않는 그 전망들이 진실일까요, 거짓일까요?
만약 이 나라에 수 많은 일자리가 있지만 국민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국민은 국가의 근본입니다. 국민이 건전한 사고를 가지고 열심히 일할 때 국가는 부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환율이 떨어져서 1 : 1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장래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한국 돈은 해외에서 사용이 되지 않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한국 돈으로 호텔비를 지불하고자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도 한국 원화를 받지 않습니다. 국가 정책에 의해서 한국 화폐의 평가가 절상이 되든 절하가 되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막대한 외채를 끌어와서 공장을 지어서 운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이자로 일년에 천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합시다. 환율이 내린 덕분에 200억만 지불해도 된다면 800억의 이익을 앉아서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 일자리가 없어지고 원자재의 구입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국가 전체로 보아서는 도움이 되기는 커녕 엄청난 문제들을 야기시킬 뿐입니다. 환율이 떨어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희망사항이지만 그 희망사항이 어떤 문제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도 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두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신을 위해서 항상 신경을 써야 합니다. 나는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큰 저수지의 둑이 터진다면 둑 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살아 남기가 힘 든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힘의 원리입니다. 어떤 큰 힘이 무너지게 될 때 그 속에서 생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운명은 문제가 없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 속에 모든 해답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미칠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잘못된 사회를 보면서도 그 사회에 나의 능력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내 자신을 너무 괴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일이 앞으로 자꾸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들도 성불할 수가 있습니다. 성불이 무엇인가? 자신의 업을 녹혀버리므로 해서 진실한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자신의 업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노력만 한다면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실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위해서 이 자리 이 시간에 모여서 토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저도 국내외적으로 활동을 좀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 5년 정도 지나면 외국의 과학자 클럽 같은 곳에 많이 알려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매우 어려운 시기입니다. 여러분들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힘든 경우에는 나에게 와서 문제를 봐 달라고 하십시오. 혹은 문제를 만들어 달라고 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여러분에게 필요한 문제를 줄 것이고, 여러분들이 풀 수 없는 문제는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왜 이 곳에 오는 것일까요? 그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잘 살기 위해서 이곳에 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속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언젠가 여러분들도 나 처럼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생각하고 그 타인을 위해서 노력하게 될 때 여러분의 속이 타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세상을 보고 그 세상에서 자신을 태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그 축복을 얻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여러분들은 항상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환경 속에서 살더라도 여러분 자신 속에 있는 일은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인연을 갖게 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 한시간 동안 설명했으니까 질문 받겠습니다.
최 부군: 홍콩의 찬이 질문을 했습니다. ‘여래님의 설법을 들으면 내용을 이해는 되는 것 같은데 그것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알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사람들에게 확인을 확인을 해보아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들은 것들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 들은 말로 인해서 변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음으로 해서 자신을 깨우치게 되면 그 깨우침이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인간은 자신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자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만큼 힘든 일이 없다. 자신을 이길 수 있다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문제를 배우고 이해하고 그리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온갖 일들이 존재하는데 그 일들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들도 있고,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항상 문제를 보고 이해하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네가 잘났거든 네가 한 번 해결해봐라!’라고 말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 때에는 힘이 필수적입니다. 물체를 움직이고자 할 때 힘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좋은 사회를 위해서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에 언제 좋은 사회가 찾아올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이 점을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문제를 외면한채로 답만 만들어 놓는다면 그 답은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특정한 답을 원한다면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원하는 답에 알맞은 문제를 조합해야 합니다. 사회 환경에 맞는 그리고 더 잘 살릴 수 있는 문제를 조합하여야 하는데 작금의 현실에서는 이런 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인하셔야 합니다.
다 됐어? 문제 몇 개 있나? 우리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 일을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질문 없으면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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